지난 23일, 충격적인 의료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베트남 출신의 피해자 임신부가 임신 6주 진단을 받은 직후 마취제를 맞고 ‘낙태 당한’ 것입니다. ‘다른 환자와 차트가 엇갈리는 바람에 실수로’ 간호사가 본인 확인 없이 임신부에게 수액 대신 마취제를 주사하였으며, 책임자인 산부인과 의사가 낙태 수술을 집도하였다고 하네요. 네티즌은 ‘살인 아니냐’,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실수로 낙태’ … ‘살인’ 혐의가 아니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

의료행위를 통해 사람을 살려내야 할 의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부주의로 소중한 생명을 박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를 우선 적용할 방침이라 밝혔습니다. ‘업무상 과실치상’은 업무상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 하거나 사람에게 상해를 준 경우 적용되는 혐의입니다.

태아가 생명을 잃었지만 오직 임신부에게 가해진 상해만을 혐의로 취급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판단일까요? 임신부의 동의를 받지 않은 낙태 시술 사건에 ‘살인’ 내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아닌,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가 우선 적용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판례로 알아보는 LAW-HANI

어느 시점부터 태아를 ‘생명’으로 인정할 것인가

태아를 ‘생명’으로 인정하는 시점에 대한 학계 의견은 다양합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수정 시기’부터 ‘착상 시기’, ‘진통 시기’, ‘출생 시기’ 모두 태아와 사람의 자격을 구분하는 데에 있어서 어느 정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법원의 태도입니다.

우리나라 법원은 민법과 형법에서 ‘태아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시기’를 서로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1976. 9. 14. 선고 76다1365 판결에서 ‘태아가 특정한 권리에 있어서 이미 태어난 것으로 본다는 것은 살아서 출생한 때에 출생시기가 문제의 사건의 시기까지 소급하여 그 때에 태아가 출생한 것과 같이 법률상 보아 준다고 해석하여야 상당하므로 그가 모체와 같이 사망하여 출생의 기회를 못가진 이상 배상청구권을 논할 여지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민법 3조에 따르면 사람이 생존하는 동안에만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아직 출생하지 않은 태아는 일반적으로 권리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태아가 모체로부터 전부 노출된 때를 출생 시기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대법원은 1982.10.12 선고 81도2621 판결에서 ‘사람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보호법익으로 하고 있는 형법상의 해석으로서는 사람의 시기는 규칙적인 진통을 동반하면서 태아가 태반으로부터 이탈하기 시작한 때 다시 말하여 분만이 개시된 때(소위 진통설 또는 분만개시설)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형사에 있어서 분만이 개시된 시점부터 태아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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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간독성 누명” 벗은 한약 이야기

따라서 ‘실수로’ 임신 6주 시기의 태아에 대해 낙태 수술을 집도한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는 ‘살인’ 내지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아닌,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가 우선 적용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는 와중에, 궁금한 점이 또 하나 생깁니다. ‘일반적으로 낙태는 불법이 아닌가?’ 헌법재판소가 최근 태도의 변화를 보여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온 판례를 추가로 소개해드립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 태도의 변화

헌법재판소는 2019. 4. 11. 선고 2017헌바127에서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다루었습니다. 심판 대상은 바로 형법 269조 제1항(‘자기낙태죄 조항’)과 제270조 제1항(‘의사낙태죄 조항’)이었습니다.

형법(1995. 12. 29. 법률 제5057호로 개정된 것)

  • 제 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제 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자세한 내용은 법제처에서 발간하는 법제소식 2019년 6월호 형법 제269조 제1항 등 위헌소원 (낙태죄 사건)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주요 논지는 태아의 생명권과 동시에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또한 헌법이 보호하여야 마땅한 가치이기 때문에 낙태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논리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결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임신 22주’ 시점부터 태아의 독자적인 생존이 가능하므로,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동시에 임신 유지와 출산 여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는 점입니다.

임신 22주 시점까지의 낙태, 사실상 허용

사실상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기 이전의 낙태를 허용한 것으로 보이는 이번 판단은 이전 헌법재판소 판결과 정반대의 생각을 보이고 있습니다. 2012년 판결 당시 헌법재판소는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췄는지 여부를 낙태 허용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판례로 알아보는 LAW-HANI

이번 의료 사고를 계기로 법원이 바라보는 태아와 사람의 구분 시기 즉, 출생 시기에 대해 살펴보았고,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훑어보았습니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임신부와 더불어 고귀한 생명이었던 태아였다는 사실이 잊혀지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기고,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이라면 더더욱 작금과 같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했어야 했습니다.

세상의 빛 한 줄기 바라본 적 없이 떠나간 생명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그리고 상실의 슬픔에 힘겨워하고 계실 어머님, 아버님께도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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