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과학, 유사 종교 등 유독 요즘 ‘유사’한 것들이 많아지는 느낌입니다. 흔히 ‘사이비'(似而非 : 겉으로는 비슷하나 속은 완전히 다름. 또는 그런 것)라 불리고 있지요. 의료계 내부에도 이와 같은 유사 의료행위가 존재하지만, 법리적인 의미의 ‘유사 의료행위’는 엄밀히 따져볼 때 ‘사이비’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이번에는 사실상 사장되어가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이슈가 되곤 하는 침구사의 ‘유사 의료행위’ 에 대해 살펴보고, 무면허 의료행위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정리해봅니다.

무면허 의료행위 ③ ‘유사 의료행위’ 란?

한의계에서 이슈가 되는 ‘유사 의료행위’의 주체는 대개 침구사입니다. 엄밀히 ‘침구사’라는 의료유사업자는 인정되지 않고, ‘침사’와 ‘구사’를 같이 이르는 명칭으로 ‘침구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침사는 치료 도구로 오직 침(針)만을 사용해야 하고, 구사는 치료 도구로 오직 뜸(灸)만을 사용해야 하죠. 한의학을 교육받았다면 국가에서 적절한 평가를 거쳐 한의사의 지위를 인정해줄 만한 것 같기도 하지만, 제도적 ‘사생아’의 뒤에는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은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침구사 제도는 일제강점기의 잔재

침구사 제도 자체가 일제강점기의 잔재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일제강점이 시작되면서 한의학을 공부해 전국민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던 ‘의사’들 즉, 한의사들은 모두 ‘의생’으로 격하당하여 의료인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였고, 이와 동시에 서양 의학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새로운 ‘의사’가 만들어졌습니다. 민족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한의학 말살’을 추진함과 동시에, 서양의학을 배운 ‘의사’의 수가 적어 전국적으로 의료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되자 ‘의사’와 ‘의생’의 중간격인 침구사 제도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당연히 국민 건강권과 같은 요소들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그저 구색만 맞춰 지배국이 선심 써주는 양 만들어낸 제도였던 것이죠. 의료 지식 및 기술에 대한 엄격한 평가 절차는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 때 자격을 인정받은 의료유사업자와, 1950년대 이후 국가적인 투자를 통해 설립된 한의과대학을 통해 배출된 전문 의료인력의 수준 차이가 극심했기에 해방 이후 정부에서는 침구사 제도를 폐기하기로 판단, 추가적인 침구사의 배출을 완전히 제한하였습니다.

다만, 이와 같은 제도의 변화를 소급 적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으므로 기존 침구사 자격을 인정받은 사람들에 한해 침구사 자격까지 박탈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침구사가 현재에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사설 자격증’을 가지고 침구사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간혹 있는데, 이러한 경우는 현행법이 인정하지 않는, 의료 서비스와는 전혀 무관한 경우이므로 이 또한 혼동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제도의 변화, 침구사의 행방은?

침구사의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할 수 있었겠지요. 그래서 헌법 소원을 통해 본인들의 자격을 한의사의 자격과 동등한 수준으로 격상시켜줄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의 판결문 두 개를 묶어 보며, 침구사들이 주장했던 내용과 그에 대한 사법적인 판단을 살펴보겠습니다. (① 헌법재판소 2013. 6. 27. 선고 2010헌마658, ② 헌법재판소 2010. 7. 29. 선고 2008헌가19,2008헌바108,2009헌마269,736,2010헌바38,2010헌마275(병합))

  1. 한의사국가시험 과목으로 침구학을 규정하고 한의원의 진료과목으로 침구과를 표시할 수 있게 하여 한의사만이 침구를 시술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침구사들의 직업선택의 자유, 평등권을 침해한다.
  2. 비의료인도 침구술 및 대체의학 시술을 할 수 있도록 그 자격 및 요건을 법률로 정하지 아니한 것(입법부작위)은 부당하다.
  3. 의료행위가 원칙적으로 의료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하는 의료법 조항들이 비의료인의 직업선택의 자유 내지 일반적 행동의 자유 및 의료소비자의 의료행위 선택권을 침해한다.
  4. 포괄적이고 불명확한 ‘의료행위’ 개념을 사용하여 침구 및 대체의학 시술을 처벌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원칙에 위반된다.

‘유사 의료행위’ 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

먼저, ‘의료행위’ 개념에 대한 주장(4.)은 이전(의료인도 모르는 ‘의료행위’)에 다룬 적이 있으므로 간단히 넘어가고, 나머지 세 가지 주장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보겠습니다

  1. 먼저, 헌법재판소는 청구인들이 침구시술을 할 수 없게 된 것은 1962년 ‘국민의료법’이 ‘의료법’으로 전부 개정되면서 의료유사업자제도의 근거 규정 등이 삭제되어 의료유사업자제도 자체가 폐지됨에 기인하는 것임을 판시하였습니다. 한의사 국가고시 과목에 침구학을 규정하는 등의 제도적 변화와는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2. 또한, 입법부작위에 대한 위헌 소송의 경우 이전의 글(의료인도 모르는 ‘의료행위’)에서와 같이 헌법의 명시적인 입법위임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쟁점이 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3. 마지막으로 의료행위가 의료인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한 면허 제도가 평등권 및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에 대하여서는, ‘한의사는 의과대학에서 체계적으로 한의학을 공부하고 상당기간 임상실습을 한 후 국가의 검증(국가시험)을 거친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비의료인과 다르다고 할 것’이라고 판시하여 침구사 등 비의료인과 확실히 선을 그었습니다.

무면허 의료행위와 관련된 판례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몇 개 되지 않는 판결문을 살펴보았으나,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으로 기소된 경우 주로 펼치는 주장에 대한 사법부의 간결한 반박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하였다고 생각됩니다. 비록 제가 직접 보여드린 판결문은 많지 않으나, 이와 관련한 판결문을 직접 찾아보셔도 몇 가지 레퍼토리를 넘지 않는 범주에서 주장이 전개되고, 이미 그에 대해 축적된 판례가 큰 변화 없이 이어지는 사례가 대부분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혹 주변에 무면허 의료행위에 혹하는 분들이 있다면, 국가적으로 국민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해 엄격하게 제한한 의료인 면허의 의미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리시길 바랍니다.

내용 추가 : ‘사설 자격증’ 관련 2017. 9. 30. 2:09


< 판례로 살펴보는 한의학, LAW-HANI >
위 글은 법학 전공자가 제공하는 전문 지식이 아닙니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은 변호사에게 의뢰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