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의 주 치료 수단은 침, 뜸, 그리고 한약입니다. 최근에는 한약의 성분을 체내에 직접 투입하는 방식의 ‘약침’ 역시 활발히 사용되면서 한약의 활용 범위가 더욱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 한약 ― 간독성 상관 관계에 대한 논란이 커지며 국내 학계에서는 끊임없이 한약과 간독성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많은 논문들을 권위 있는 학술지에 게재하고 있기도 합니다.

별 탈 없이 한약이 처방되는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의사와 한의사가 배타적인 진료 영역을 가지는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한약의 간독성 논란이 일며 “모든 한약은 간독성 위험이 있다”는 식의 선입견이 생기기도 했는데요, 그릇된 편견 때문에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약 4년에 걸쳐 3심까지 진행된 의료 소송이 있어 이 사건을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대법원 2011.10.13. 선고 2009다102209

의료 소송을 제기한 원고 甲은 A병원에서 2002년 3월부터 당뇨와 혈압 치료를 위한 치료를 받아왔고, 소송 당시 복용 중인 약물은 Amaryl (glimepride), Diabex (metformin), Aspirin, Enalapril (ACE inhibitor), Lipitor (atroavstatin calcium)이었습니다. 그리고 2005년 1월, 골프 연습장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한의사(피고) 乙로부터 한약을 복용해볼 것을 권유받아 약 2개월 간 순차적으로 열다한소탕, 삼소음 등 4가지 한약을 복용하였습니다. 이후 3월 말부터 황달 증세가 나타나 4월, 전격성 간부전이라는 진단을 받고 B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간 이식 거부 증상 및 합병증이 나타나 지속적인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건과 관련된 의사 두 명은 공통적으로 “한약이 간독성 발생의 원인”이라고 주장하였고, 환자는 이 얘기만 믿고 한의사를 상대로 의료 소송을 시작하게 되는데요,  피고(환자)가 제기한 소송의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한약에 중금속(비소, 수은 등)이 들어 있었음에 분명하다.
  2. 복용한 한약 때문에 전격성 간부전이 발생하였다.
  3. 전원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전격성 간부전이 발생하였다.

1. 중금속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감정 결과 한의사가 처방한 한약에 중금속은 검출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피고의 주장은 사실 무근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2000년대 중후반 한약과 관련한 홍보가 이루어지며 그 중 첫 번째로 거론된 것이 바로 한약에 중금속이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국내 또는 해외에서 생산된 모든 한약재가 한의사가 처방한 한약에 사용되기 위해서는 식약처의 검수가 필수적이며 그 기준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쌀과 같은 음식물보다도 훨씬 까다롭게 적용된다는 점이 알려졌습니다. 톡톡하니 블로그에도 이와 관련한 포스트(한약 중금속? 한약재에 관한 오해와 진실)가 올라와 있으니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2. 한약이 전격성 간부전의 원인이라 단정할 근거가 없었습니다.

법원은 환자가 복용하던 당뇨약과 혈압약 등이 간 손상의 위험이 있는 약물들이었던 반면, 한의사가 처방한 한약에 포함된 길경, 나복자, 백지 등의 성분은 일반적으로 간독성을 유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처방 구성 약물 중 갈근, 황금(黃芩)이 간독성과 관련한 소수의 보고가 존재하는 약재였으나 처방의 극히 일부였으므로 이로 인해 간독성이 일어날 가능성 역시 매우 적어 한약으로 인해 간부전이 유발되었을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한약과 간독성의 상관 관계를 알아보고자 하는 학계의 많은 논문들이 발표되고 있으나, 세계적으로 양약보다 한약은 간독성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어 이와 관련된 논란 또한 한약의 중금속 논란과 마찬가지로 곧 사그라들 것으로 보입니다.

3. 환자는 간독성 관련하여 한의사와 상담한 적이 없었습니다.

한의사가 한약 복용 후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몇 가지 언급하였으나 환자는 가벼운 감기 증상을 제외하고는 한의사에게 자신의 증상을 설명한 적이 없고, 한의원 내의 혈액 검사가 금지되어 있으므로 한의사가 전원을 실시하지 않은 판단 역시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단입니다. 가벼운 황달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때에라도 환자가 한의사 또는 의사와 상담했더라면 사태가 간이식 수술과 같은 극단적인 양상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한의사 역시 간독성과 관련하여 환자에게 충분한 주의를 주지 않았고, 이에 대해 환자가 진료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잃게 되었다고 보아 한의사 또한 손해 배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한의사는 처방 당시 소화 장애, 설사, 복통, 두통 등의 증상에 대해 언급하였을 뿐, 정기적인 혈액 검사 또는 간 손상의 가능성에 대하여 환자에게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결국 한의사는 2000만원의 손해 배상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간독성과 관련하여 대전대학교 학부생들이 체계적 문헌고찰(SR)을 진행,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SCI급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Systematic review on herb-induced liver injury in Korea.)하여 일반적으로 ‘한약의 간독성’이라 알려진 사례들 중 대다수가 한의사에 의한 처방이 아닌, 마트나 시장에서 구입한 약재들로 제조된 일명 ‘개소주’에 의한 것임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도 하였습니다.

간 손상에 대한 한약의 누명으로 인해 긴 시간에 걸쳐 진행된 본 사건 판결에서는, 한의사가 단순히 한약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할 뿐만 아니라 한약과 양약의 상호 작용에 대해서도 환자에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음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의사 뿐 아니라 의사 역시 가져야 할 의료인의 기본 소양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이원화된 의료 시스템 아래서 이와 같은 지식들까지 섭렵하는 것은 의사와 한의사 모두에게 어려운 일이겠으나, 환자의 건강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 볼 수 있지요. 의사 역시 단순히 ‘한약은 간을 손상시킨다’는 주장을 넘어 어떤 한약재가 간독성을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지, 또 어떤 처방에 어떤 한약재가 들어가는지 숙지하여야 환자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 판례로 살펴보는 한의학, LAW-HANI >
위 글은 법학 전공자가 제공하는 전문 지식이 아닙니다.
전문적인 법률 지식은 변호사에게 의뢰하시기 바랍니다.

2 COMMENTS

  1. […] 위와 같은 사법적인 해석에 기반하여 2014년 3월 보건복지부는 한의사의 혈액검사와 관련, “한의사가 자동화기기를 사용해 혈액검사를 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유권해석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최근 한약 복용과 간 손상 간의 상관 관계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는 분위기 속에서 한의사는 한약 복용 전과 후의 간 손상 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 진단 수단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었는데, 위와 같은 유권해석을 통해 근거없는 간독성 루머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2011년에는 별다른 근거 없이 한약 복용이 간 손상으로 이어졌다는 의사의 주장을 기각하며 사법부가 한의사의 손을 들어주기도 하였습니다. (끝내 “간독성 누명” 벗은 한약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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